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진호 전투 (문단 편집) == 미군 역사상 가장 추운 전투의 비극 == || [[파일:한국전쟁_장진호 전투_미해병대_동장군.jpg|width=100%]] || * 이 사진은 장진호에서 포위당한 채 사투를 벌이고 있던 미 해병대원을 찍은 사진으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이것저것 몸을 감싸고 손에는 얼어붙은 깡통을 들고 있으나,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지에 찬 눈빛]]이 인상적인 사진이다. 아래는 사진이 수록된 책인 This is War!에서 인용한 기록이다. >"Dawn was just over the horizon. A Marine . . . kept prodding with his spoon, trying to break loose a single, frost-coated bean from the others in his can. He could neither move it nor long continue holding the spoon between his gloved but almost rigid fingers. He found one, and slowly raised it to his mouth. He stood unmoving, waiting for it to thaw. When asked what he would have wanted if he could have had any wish, he continued to stand motionless, with empty eyes. Then his lips began to open . . . [and] his eyes went up into the graying sky, and he said, 'Give me Tomorrow.' >---- >[Korea, December 1950.]" This Is War!: A Photo-Narrative of the Korean War, pp. 144. >"새벽빛이 지평선을 넘었다. 해병은… 자신의 숟가락을 들고, 캔에 들어있는 서리를 뒤집어쓴 콩 한쪽을, 캔에서 꺼내기 위해 계속 찔렀다. 그의 장갑을 낀 거의 완전히 굳어버린 손가락으로는 숟가락을 계속해서 붙들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는 콩 하나를 떼내어, 천천히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그게 입 안에서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어떤 소원이라도 있다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볼 때도, 그는 미동도 없이, 공허한 눈으로 서있었다. 그 뒤 그의 입이 열리고… 그리고 그의 눈이 회색으로 밝아가는 하늘을 향하며, 그가 말하길, '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 >[한국, 1950년 12월]" 이것이 전쟁이다!, 144 페이지. 사진을 찍은 데이비드 더글러스 던컨([[https://en.wikipedia.org/wiki/David_Douglas_Duncan|David Douglas Duncan]])은 1950년도의 US 사진가 공적상을 받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때는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 같이 매섭게 추운 아침이었다. 그야말로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감사 그 자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녁이면 그 밤이 샐 때까지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인생이 짧게도 또는 영원같이도 느껴지는 세계다. 여기에서 해병대원에게 "[[크리스마스]] 날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생존|내일]]을 달라."라고 대답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 일화는 어느 한 병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묻자, 그 병사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일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하는 일화로 퍼져나갔다.] ||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41303083_2.jpg|width=100%]] || || 장진호에서 얼어 죽은 미군 시신 || || [[파일:CHANGJIN-RESERVOIR.gif]] || || 한반도 12월 평균 기온[* 붉은 점이 [[함경남도]] [[장진군]]이다. 춥다는 장진군의 명성에 비해서 그렇게 안 추운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지만, 12월의 기온인데다가 사실 한반도가 겨울에는 서구에 비교하면 북미 일부 지역,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추운 편이다. '12월 평균 기온은 -11.6도'라는 서술에 부합한다. 물론 기상대가 그나마 호수를 낀 저지대인 읍내에 있으니 덜 춥게 기록된 면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가장 오지가 여기가 아니라 [[삼수갑산]]이라고 하여 더 동북쪽이 오지라고 여겼다.] || || [youtube(ZYoI_dfTqiU)] || || [[장진호]]에서 흥남으로 철수하는 [[미 해병대]]가 촬영한 기록 영상. 극한의 추위에 시달리는 병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 한참 유담리를 향해 진격하던 11월 초에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경남도]] [[장진군]]에 위치한 장진호 주변의 위도는 [[로마]]보다도 낮은 북위 40°23', 고도는 평균 1,200m지만 이 일대는 [[한반도]]에서 [[삼수갑산]] 일대를 제외하면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로, 12월 평균 기온은 -11.6도 정도, [[http://www.kma.go.kr/repositary/sfc/pdf/nko_ann_2016.pdf|2016년 기준 기상청 자료]]를 보면 장진군 12월 아침 최저 기온은 -17.6도, 한낮 최고 기온은 -3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철원군]], [[대관령]] 등지의 겨울 기온이 -5~8도 정도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최소 북위 50º 이북, [[유럽]]에서는 최소 '''북극권'''(북위 66º 33' 이북)으로 올라가야 장진 일대와 비슷한 기온을 띈다.] 한랭지대다.[*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 이하면 한파주의보, 영하 15도 이하면 한파경보가 발령된다. 장진호 지역은 겨울에 항시 한파경보 상태다.] 12월 평균 풍속은 1.2 m/s로 이 정도의 풍속이면 체감온도는 약 3, 4도 더 내려간다. [[https://data.kma.go.kr/climate/windChill/selectWindChillChart.do|기상청 체감온도 측정 기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스크바]]의 강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심심하면 아침 최저 기온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닥치기 시작했고, 가장 추운 날에는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45도'''를 기록한 적도 있었고,[* [[미국]]을 기준으로 영하 37도 이하면 극한(Extreme cold) 경보를 발령했다.] 결국 그 이후로 모든 게 얼어붙었다. 미처 방한복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미군]]에서는, 보급의 힘으로 나중에라도 어찌어찌 옷을 껴입더라도 동상으로 실려가는 환자가 속출했다. 당연히 미군보다 보급이 열악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은 사정이 훨씬 나빴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었다. 그리하여 '''양군의 사상자는 교전보다 이 강추위 때문에 훨씬 많이 발생했다.''' 한 마디로 [[6.25 전쟁]] 판 [[모스크바 전투]]. 하지만 추위로 따지자면 장진호 전투는 [[모스크바 전투]]나[* [[세계기상기구]]에서 제공하는 지난 30년 간 [[모스크바]]의 1월 아침 최저 기온은 평균 -12.3도, 낮 최고 기온은 평균 -4.5도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세계기상기구에서 제공하는 지난 30년 간 [[볼고그라드]]의 1월 아침 최저 기온은 평균 -10.7도, 낮 최고 기온은 평균 -4.5도다.] 더 추웠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영하 30도 이하는 전투 기간 내내 딱 1번 기록[* 이 기록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돈 강 전선에 있던 부대가 기록한 자료다.]되었다. 스탈린그라드 기온 측정 역사상 최저기온은 영하 32.6도이며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8도인 반면, [[장진군]]은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5.5도[* 북아메리카 기준 [[캐나다]]의 [[위니펙]](북위 50도)과 비슷하다. [[유럽]] 기준으로는 대략 [[러시아]]의 [[네네츠 자치구|나리얀마르]](북위 68도)와 비슷하다. 더 극단적으로는 [[스발바르 제도]]('''북위 78도''') 수준이다!]이고 전투가 일어난 12월 평균 기온도 영하 11.6도다. 현재 휴전선 이남에서 가장 추운 축에 속하는 [[철원군]]의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5.5도, [[대관령]]이 영하 6.9도 정도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추운 것은 아니라서, 당장 한국 역사에서도 이 일대에 신라 [[진흥왕]]이 황초령비를 세워 진출한 적 있고, 고려 [[공민왕]]은 소빙기가 시작될 무렵 아예 여기를 뚫고 압록강가에 도달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도 소빙기에 개마고원 옆 산간지대를 포함한 곳에서 이루어진 전투로 일본군이 겨울 추위에 고생했다. 개마고원도 사실 기원전부터 이미 각 세력의 각축장이었다. [[몽골 제국]]은 여기보다 더 추운 곳에서 살길을 찾아 발흥하기 시작했다. 개마고원과 그 북쪽은 여름에는 그나마 살만했기에[* 북유럽 북부보다도 개마고원이 인구밀도가 높았던 이유다. 개마고원은 이미 조선 초기에도 지도에 표시되던 곳이나 북유럽의 산맥은 17세기에도 지도에 제대로 표시되지 못한 곳도 있었다.] 한민족은 물론 거란족, 공민왕 이전 시기의 여진족 같은 이민족이 통로삼아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는 추위로는 딱히 특별한 전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서양에서도 기원전에 빙하가 없는 개마고원보다 험준한 알프스를 [[한니발]]이 초겨울에 넘기도 했다. 분단 후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보가 부족해지며 빙하가 있는 [[알프스]]가 개마고원 사진이라고 인터넷에 돌아다닐 정도로 과장된 인식이 생겨 개마고원이 무슨 빙하가 있는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보니 한국인 입장의 추위가 딱히 가늠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다만 '''아열대 지역에서는 현대에도 영하만 되어도 사망자가 발생하듯, 서양인이라면 러시아인이나 정도[* [[하바롭스크]], [[노보시비르스크]]처럼 장진호보다 추운 곳에서도 대도시가 있다. 저정도로 추운 곳은 장진호보다 더 고도가 높고 바다와 격리된 백두산 일대까지 가야한다. 현대 북한도 기어이 이런 곳에 [[삼지연시]] 같은 신도시를 세웠다.]나 적응할만한 기후'''에 전투를 치르니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더미처럼 시체가 쌓여 있었어도 시체가 얼어붙어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고작 100여일 전까지만 해도 35도가 넘는 끈적거리고 극심한 [[폭염]][* 알다시피 [[대구광역시]]를 비롯한 영남 내륙 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여름은 습하고 덥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폭발적으로 올라간다.]이 기승을 부려, [[낙동강]] 전선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백선엽]] 장군의 [[제1보병사단|1사단]] 방어진지를 인수해야 하는 [[미군]]이 '시체 다 치우고 가라, 아님 인수 안 하겠다.'고 한 건 유명한 일화다. 한국에서야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것을 자랑거리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독일 제국]]이 먼저 자연환경을 나라의 장점으로 내세웠고, 이후 [[일본]]이 그걸 수입한 것을 다시 [[한국]]이 수입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계절이 뚜렷함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도 주로 근대화 후발 주자들이 학술적으로, 문화적으로 내세울 게 별로 없을 때 내세우는 레퍼토리이다. (사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뚜렷한 4계절'이 자랑거리라는 이야기는 90년대 이전, 즉 한국의 국력과 영향력이 아직 미약하여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에 자주 나오던 것이다. 이후 국력의 신장으로 정말 자랑할만한 소재들이 제법 생긴 이후에는 이러한 레퍼토리의 활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적도 부근이나 극지방을 제외하면 사계절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다른 언어에도 각각의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는 다 있다. 극한지대인 [[남극]]이나 [[북극]], [[적도]]조차 겨울에는 평소보다 춥고 여름에는 평소보다 기온이 풀리는 등 차이가 있다. 실제로 일본 찬양 목적 방송에 단역으로 출연한 외국인 출연자들은 방송에서는 일본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고 찬양 멘트를 날렸지만 돌아서서는 '우리나라도 사계절 다 있는데 그게 뭔 장점이라고…' 하며 한심해했다([[https://globalreaction.tistory.com/92|관련 포스트]]).] 좋게 말해서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지, 직설적으로 말하면 [[연교차]]가 극심해서 사람 살기 괴로운 기후다. 미군의 참전수기를 보면 “한국은 [[플로리다]]만 한 나라임에도 기후가 매우 변화무쌍하고 날씨가 극단적이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연교차가 극심하지 않은 기후의 다른 나라에서는 특정 계절옷 한 종류로도 4계절 내내 버틴다. [[쾨펜의 기후 구분]]을 참고하면 [[한반도]]는 좁은 국토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기후대가 나타난다.[* 북부 지방과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영서]] 지방은 [[냉대 동계 건조 기후|냉대기후]]에 속하고 [[서해 5도]], [[영동]] 및 남부 지방은 [[온대 하우 기후|온대]] [[온난 습윤 기후|기후]]에 속하며 [[제주특별자치도]]는 [[아열대기후]]로 '''무려 기후대 3개가 지나간다.''' 한반도와 면적이 비슷한 [[영국]]은 전면적으로 [[서안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결국 1950년 [[미군]]은 예상에도 없던 지독한 [[낙동강]]에서의 [[혹서기]], [[장진호]]의 [[혹한기]] 전투를 4개월(낙동강 전투는 8월, 장진호 전투는 12월) 안에 모두 경험하게 됐다.[* 가령 한반도와 면적이 비슷한 [[영국]]은 1월에 남부 [[런던]] 평균 기온이 영상 5.2℃이고 북부 [[글래스고]]가 4.3℃로 온도 차가 1℃도 차이도 나지 않는다. 반면, 한반도는 1월에 가장 따뜻한 [[서귀포시]] 평균기온이 영상 6.8℃이고 가장 추운 [[삼지연시]] 1월 평균기온이 -22.8℃로 온도 차이가 무려 30°C가량 난다. 한반도보다 면적이 더 큰 [[독일]]도 1월에 남부 [[뮌헨]]과 북부 [[함부르크]]의 온도 차이가 1℃ 정도밖에 안 난다. 심지어 영토가 영국, 독일보다 더 크고 [[한반도]]의 1.7배 정도 되는 [[일본]]도 1월에 북부인 [[홋카이도]] [[삿포로]]의 1월 평균기온은 -3.6°C이며 가장 추운 [[아사히카와]]의 1월 평균기온이 -7.5°C이고 최남단인 [[오키나와]]의 [[나하]]의 1월 평균기온은 17.1°C로 차가 24℃ 정도가 된다. 이 정도도 꽤 크긴 하지만 한반도에 비하면… 한반도가 국토 면적에 비해 얼마나 기후가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이 정도 기온 차이는 한반도의 35배에 육박하는 미국 본토([[알래스카]], [[하와이]] 제외)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추운 중부 [[캐나다]] 국경지대 지역의 1월 평균 기온이 -15℃ 전후, 남쪽 끝 가장 따뜻한 [[마이애미]]의 1월 평균 기온이 20℃로 약 35℃ 차이가 난다.] 오죽하면 2018년 [[미 해병대]] 사령관 [[로버트 넬러]] 대장이 "한반도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데다 지형까지 험난해서 훈련하기엔 매우 좋은 장소"라고 평했다. 진지 구축을 하면 땀 때문에 옷이 얼어붙을 지경이었고, 이럴 경우 땀에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그대로 얼어붙기 때문에, 옷을 벗는 것보다 더 많은 체온을 손실할 우려가 있다. 이런 일을 막고자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벗고 작업해야 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한 번에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한 겹씩 옷을 벗은 후, 서서히 일의 강도를 줄이면서 다시 한 겹씩 옷을 입는 아주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땅이 단단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에 일반 [[야전삽]]으로는 땅을 긁기만 해도 쉽게 부러졌고,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에게서 노획한 [[곡괭이]]가 그나마 제대로 땅을 팔 수 있는 장비였다고 한다. 만일 땅에 바위가 많거나 단단한 지형이라면 깡통에 폭약을 넣고 한 방향으로 터뜨리는 급조 폭탄만이 유일하게 땅을 팔 수 있는 도구였다. 추위로 인해 얼어붙은 땅바닥은 공중 [[보급]]에 악영향을 주었다. 통상적인 [[낙하산]]에 보급 물자를 묶어서 투하하면, 적어도 40%는 땅바닥과 격돌해서 완전히 파손되었다. 덕분에 공중보급 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태인 물자가 사방에 흩뿌려져서 회수하기 힘들다는 점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실제로 제대로 부대에 전달되는 양은 25% 정도였다고 한다. 추위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장비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모든 [[총기]]는 약실 내 [[장약]]의 폭발압과 [[대기압]]과의 상대적 압력차로 작동하며, [[자동화기]]는 그 압력차를 이용해 [[탄피]] 배출과 차탄 장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당연히 기압이 높아지는데, 당시 장진호는 너무 추운 나머지 작동 가스압이 약한 편인 [[M1 카빈]]부터 탄피 배출 및 차탄 장전 장치가 그대로 마비되었고, [[백병전]] 때는 쉽게 [[개머리판]]이 박살나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또한 발사압도 많이 약해진 편이었기에, 극한의 추위 속에선 발사된 총탄의 [[운동 에너지]]마저 심각하게 감소하여 '위력과 탄도가 엉망이 된 카빈으로는 '''중공군 방한복도 뚫지 못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장비 신뢰성이 떨어졌고, 선임 병사들은 후임들에게 "카빈은 그저 가지고 다니는 것일 뿐, [[자살|마지막]]을 위한 무기이다. 굳이 쏘겠다면 무조건 머리를 겨눠라."라고 가르쳤다. [[기관단총]]은 말할 것도 없어서, 죄다 탄창 끼운 [[새총]]으로 변해버렸다. 그나마 태생적으로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강한 [[개런드]]는 추위에 잘 견뎌서 가능하면 다들 카빈은 버리고 개런드를 구하려고 애썼다. 그 중에도 [[저격수]]용으로 개조된 개런드는 손이 얼어 방아쇠를 당기기가 어려워지자, 손가락 걸이를 누르면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기도 했다. 카빈을 버리고 중공군의 [[모신나강]]과 [[Kar98k]]를 [[노획]]해서 쓴 병사들도 있었는데 개런드와 마찬가지의 대구경에 볼트액션 방식이라 작동불량의 여지가 적어서 꽤나 쓸만했다고 한다.[* 왜 중공군이 독일 총인 [[Kar98k]]를 들고 있느냐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중화민국]]은 [[나치 독일]]과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동맹국이었다.]] 중일전쟁 때문에 관계가 파탄이 나서 그렇지... 말 그대로 중화민국 육군이 들고 있던 걸 중공군이 노획해서 여기서 쓰다가 미국이 또 노획한 것.] 게다가 모든 차량, [[전차]]는 최소한 2시간에 한 번씩 엔진을 작동시켜서 데워주지 않으면 냉각수에 배터리까지 모조리 얼어서 터져버리고, [[수랭식 기관총]]도 냉각수를 넣으면 [[동파|얼어서 터지므로]] 아예 냉각수를 넣지 못했는데, 냉각수 없이 연사해도 과열이 되지 않고 금방 [[방열]]이 될 정도로 날씨가 추웠다고 한다. 무더운 아4열대지방에서 벌어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위 워 솔저스]]를 보면 과열된 박격포에 [[소변]]을 누어 식히는 장면이 있는데, 장진호에선 그 반대로 수랭식 기관총 냉각수가 얼자 소변을 누어 해동시키려고 했지만 잘 안 통했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어 소변을 누어 덥혀봤자 금방 다시 소변채로 얼어붙을 것이 뻔했다.] 꽁꽁 얼어붙은 지면 위에 어거지로 방열한 [[박격포]]는 쏘기만 하면 포판이 박살나기 일쑤고, [[야포]]도 사거리가 감소한 데다 신관이 얼어붙어서 불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 [[수류탄]]도 신관이 얼어서 불발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추운 날씨는 식사 시간마저 방해했다. [[씨레이션]] 깡통을 따뜻하게 먹으려고 모닥불에서 가열했더니 [[삼층밥|바닥은 다 타고 위는 여전히 얼어 있었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이걸 억지로 먹은 해병들은 심각한 [[장염]]과 [[설사]]에 걸렸다. 대표적인 것이 [[추수감사절]] 기념으로 나온 [[칠면조]]로, 취사장에서 칠면조 고기에 눈을 쏟아 붓고 가열하였는데 이거 먹고 죄다 [[설사]]해서 상당수 인원이 죽다 살았다. 이 때문에 씨레이션에서 동결된 고기 스튜, 콩 요리, 육류 등은 가능한 한 안 먹었다. 대신 캔디, 비스킷, 크래커 등 마른 것들이 인기가 있었으며, 심지어 이것만으로 배를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아래 이야깃거리 문단에도 있지만 [[전투식량]]에 포함된 [[투시 롤]] 캔디는 장진호 전역의 병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전투 기간 내내 미군 병사들의 열량 공급을 책임졌다. 투시 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각별했던지, 이후 장진호 참전용사들의 후일담에서 투시 롤은 거의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회자된다. [[PX]]에 있던 물자를 소각하려다가 그 대부분이 캔디나 과자였기 때문에 장병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마른 음식은 [[단백질]]이 없는 [[탄수화물]] 위주였기 때문에, 이 것만 먹고 버티던 미군은 체중과 근육량이 미친듯한 속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혹한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열량을 끝없이 소모하는 데다, 육식 위주 식생활로 공급되던 단백질이 고갈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생리 현상도 추위는 간과하지 않았다. 야외에서 [[설사]]를 한 번이라도 하면 [[항문]]까지 동상에 걸리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제대로 데우지 못한 전투식량을 먹고 탈이 나거나 [[이질]]과[* [[1950년대]] [[한반도]]에서는 이질과 같은 [[수인성 전염병|수인성 질병]]이 흔한 편이었다. 당장 이질만 하더라도 지금은 발병 빈도가 크게 줄었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꽤 흔한 병이었고, [[장티푸스]]나 [[콜레라]]도 1950년대에는 흔했다.] 같은 병이 있는 사람은 지옥 중 지옥을 맛보아야 했다. 이런 혹한 때문에 부상자를 잠시만 눈 위에 두어도 바로 동사했고, 병사들은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이렇게 천하의 [[미군]]도 오만 고생을 했던 만큼, 미군보다 물자가 부실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상태는 미군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중공군이 공식 기록에서 피해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장진호 전투에서의 혹독한 추위와 부실한 보급으로 인한 참상은 다 가리지 못할 정도다. 예를 들어 [[중국]] 군사과학원에서 펴낸 『항미원조전쟁사』에 나온 바에 의하면, 신흥리 전투에 참가한 제27군 제80사단 제240연대 제5중대는 야간 돌격 과정에서 미군의 격렬한 제압사격 때문에 눈밭 위에 그대로 엎드렸는데, 어째서인지 미군의 제압 사격이 끝난 후에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대원 모두가 그대로 얼어 죽어버린 것이다.''' 또한 12월 8일 밤에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자, 미군의 탈출을 저지하기 위해 고지진지에 포진한 병사들 상당수가 얼어 죽었다. 전장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총 맞거나, 그대로 포로로 잡히거나, 집단 투항하기도 하는 등 양쪽 군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혈액]]과 [[모르핀]]도 얼어붙어서 [[의무병]]이 모르핀 앰플을 계속 입 안에 넣고, [[수혈]]팩은 겨드랑이에 끼고 체온으로 데워서 얼지 않도록 조치해야 했다. 이 강추위에 대해 <브레이크 아웃>이란 장진호 전투의 [[미 해병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서적에서는 한 가지 아이러니를 소개했다. 부상자들에게 감아놓은 붕대에 맺힌 피가 얼어붙어서 지혈 효과를 줬다는 것. 인터뷰 대상자가 "하여간 지혈은 정말 잘 됐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붕대를 교체하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바로 동상이며 부상자의 상처 부위를 보기 위해 옷을 자르면 역시 동상이기 때문에 붕대 교체 대신 침낭에 쑤셔 넣는 것이 구호소에서 했던 치료 방식이었다. 이 전투에서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H-19]] [[헬리콥터]]가 크게 활약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SCR]]-300 통신기와 610-야전전화기 배터리가 강추위로 인해 급속히 소진되어 부대들 간에 통신이나 포병과 연락하여 포격 지원을 받기 힘들었다. 육군 맥클린 연대장이 사실은 예하 보병대대가 [[함흥]]에 있었지만 연락 두절되어 그 사실을 모르고 근처까지 온 줄로 알고 달려가다가 중공군에게 잡힌 것도 이런 이유. 덕동고개의 영웅인 해병대 F중대도 배터리 소모로 통신이 두절되어 개고생했다. 추위가 [[배터리]] 전자를 생산하는 화학 반응을 방해했기 때문.[* 현대의 기술로도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해서 지금의 [[스마트폰]] 역시 겨울에 더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요약하자면 모든 것이 얼어붙는 [[추위]]가 장진호 전투의 진정한 지배자이자 미군과 중공군을 막론하고 당시 병사들이 진짜로 싸워야 할 상대였다. '''장진호 전투는 2023년 현재까지도 미군이 [[혹한기]] 시기에 제대로 싸워본 거의 유일한 경험이다.''' 이 때문에 장진호 전투는 미군의 극한지 전투 교리에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장진호 전투의 동장군을 교훈으로 [[주한미군]]은 [[알래스카]] 주둔군 수준의 방한복을 보급 받는다고 한다. 미 해병대도 [[핀란드]]가 2022년에 NATO 가입 신청서를 내자 [[https://www.youtube.com/watch?v=8oYqkgFElao|원정군을 보내서 혹한기 훈련을 하는 등]] 여전히 장진호 전투의 영향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